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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중국 내 정신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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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24일 중국 쓰촨성의 안시엔정신병원에서 팔과 다리가 결박된정신질환자의 모습. 중국 당국은 2000년부터 반체제 인사들을 구금하고 처벌하는데 정신병원을 사용했다.(China Photos/Getty Images)

2008년 8월 24일 중국 쓰촨성의 안시엔정신병원에서 팔과 다리가 결박된정신질환자의 모습. 중국 당국은 2000년부터 반체제 인사들을 구금하고 처벌하는데 정신병원을 사용했다.(China Photos/Getty Images)

중국에서 실종된 민주주의 운동가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는 건강한 상태였지만 5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중국의 민주주의 미래를 대표했던 그는 이제 중국 당국이 반체제 인사들의 입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끔찍한 방법을 알린 상징이 됐다.

마진춘 박사는 내과에서 상하이의 정신병원(Shanghai Civil Affairs First Psychiatric Center)으로 발령을 받은 후 정신병원에 경찰이 보낸 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마 박사는 그 환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는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치아오종링이 바로 경찰이 보낸 환자로, 치아오가 정신 질환이 없는 정상인이라는 것을 확진했다. 치아오의 생각은 중국공산당이 용인할 수 없는 발상들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치아오는 3정신 병원 3곳을 돌며 옮겨졌다. 매번 병원이 바뀔 때마다 정신과 약물의 양이 늘어만 갔다. 투여된 약물이 늘어날수록 그의 건강은 쇠약해졌다. 마진춘 박사는 치아오가 정신 병원에 있으면 안 된다며 그는 대학 교수를 해야 할 인물이라고 말했다.

마 박사는 의사 윤리관과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 치아오를 돕기로 했다. 마 박사는 병원 담당자들과 수석 의사들을 모아 치아오의 진단 및 치료에 대해 논의했다. 병원 부원장은 치아오에 대한 진단이 병원에서 한 것이 아니라 경찰이 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한 선임 의사는 그에게 정신질환자만이 공산당에 반하는 이념을 가진 시대라고 말했다. 마 박사에게 돌아온 것은 치아오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마 박사는 치아오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 국제 사회의 도움을 얻고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홍콩의 오픈(Open) 매거진의 수석 편집인이자 중국 밖에서 치아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진종(Jin Zhong)을 찾아갔다.

1970년대 후반 상하이에 거주한 사람들 대부분은 치아오종링(Qiao Zhongling)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에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며 민주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베이징에서는 ‘시단민주벽’으로 알려졌으며 상하이에서는 ‘민주주의 포럼’이라 불렸다.

이들 운동가는 수천 명의 사람이 모이는 상하이의 인민광장에서 연설을 진행했다. 치아오는 그곳에서 거의 매일 연설했다. 덩샤오핑이 이 민주주의 운동을 무너뜨리기로 한 뒤 치아오는 구속됐다.

3년 동안 감옥에서 지낸 치아오는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 또, 모든 지인과 친척들은 치아오를 피했다. 그는 공안의 감시를 계속 받았고 학대당했다. 경찰은 그에게 다른 활동을 첩보하라고 강요했다.

2001년 치아오는 홍콩을 방문했다. 진종(Jin Zhong)은 그를 인터뷰했고 오픈 매거진의 2001년 5월호에 그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이 자세한 기사가 그에 대해 발행된 유일한 이야기인 것으로 보인다. 기사가 발표된 달에 치아오는 상하이로 돌아갔다.

그 후 마 박사가 진종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진종은 치아오에 대한 두 번째 기사를 발표해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 세계에 알렸다.

 

박해 방법

정신 병원을 탄압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중국에서 흔한 일이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공산당은 지배 초반 30년 동안 공산당의 적을 탄압하기 위해 정신 병원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흔한 방식은 사형, 투옥, 감시였다. 반혁명 분자들을 정신 질환자로 분류하는 것은 공산당에 이득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처벌이 얼마나 심각하든 겁을 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시대가 끝나고 계급투쟁은 더는 탄압의 구실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탄압 도구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정상인이 정부와 대립해 정신병원에 보내졌다는 보고는 극히 드물게 있었지만, 정신 병원은 절대 체계적으로 탄압 도구로 이용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가 왕완싱의 경우다. 1992년 6월 3일 벌어진 천안문 대학살의 3주기를 하루 앞둔 날, 왕은 민주주의 학생 운동이 바로잡혀야 한다고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쳤다. 그 후 그는 13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공산당은 왕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1999년 완전히 달라졌다. 그 해 7월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후 많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 중 두 가지가 파룬궁 수련자 수가 많다는 것과 이들을 진압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쩌민과 공산당은 갑자기 수백만 명의 수련자들을 억압하기 위해 법의 영역 밖에 있는 방식이 급하게 필요했다. 강제 노동 수용소, 세뇌 센터, 정신 병원이 박해의 도구로 급부상했다.

정신병원 사용이 널리 퍼진 시기와 방식은 명확히 알려져 있진 않다. 파룬궁 사이트인 밍후이왕(minghui.org)은 첫 사건을 2000년 1월 2일에 처음 보고했다. 1999년 12월 16일 베이징 청관의 공안은 그 어떤 법적 조치나 의학적 절차 없이 파룬궁 수련자 50명을 저우커우텐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뉴욕타임스도 이 사건에 대해 보도했다. 한 공안 대변인은 AFP와 인터뷰에서 “그들은 환자가 아니며, 다시 교육을 받기 위해 그곳에 있을 뿐이다”라고 전했다. 이 사건에서 정신병원이 억류의 장소이자 파룬궁 수련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첫 정신 병원 학대는 사건 발생 한 달 뒤에 보도됐다. 중국 남부의 광서장족자치구의 베이하이시 민사 법원 판사인 황진춘은 롱시엔센 정신병원에서 2개월 동안 고문을 받았다.

2000년 2월 밍후이 사이트에 발표된 보고서에서 황은 “주사된 약물 때문에 피곤하고 졸려웠지만 안절부절못하는 심리 상태가 지속해 온종일 불안했다.

그들은 나를 보며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했나? 파룬궁과 약물 중 무엇이 더 강력할까?’라고 말하며 비웃었다”고 밝혔다.

정신적 학대 사례는 그 후 수개월 동안 계속해 보도됐다. 국제 정신과 학회가 2000년 4월 베이징에서 열린 두 번째 연간 중-미 정신과학 회의에서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충분한 사례가 수집됐다. 중국 의료진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이유는 크게 설득력이 있지 않았다. 한 중국인 정신과 전문의는 “전에는 중국의 정신과학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 캠페인의 도구로 사용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전에는 누군가를 박해하려면 이처럼 문명화된 게임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 의사는 당국이 전에는 박해에 정신과학을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정신과학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왕완싱은 자신이 풀려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파룬궁에 대한 박해 운동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1999년부터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정신병원에 갇혔다. 왕의 사례를 통해 중국공산당이 정신병원을 체계적인 억압의 도구로 사용한 것은 파룬궁의 박해와 함께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4월 파룬궁박해국제추적조사기구(World Organization to Investigate Persecu-tion of Falun Gong, WOIPFG)는 중국 내 15개 성에서 정신병원 100군데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가운데 83%가 파룬궁 수련자들을 받아 치료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고, 50% 이상은 수련자들이 어떤 정신 질환도 없었지만 그들의 신념을 포기하게 하려고 강제로 가뒀다고 말했다.

파룬궁 수련자 다수가 경찰이나 지역 당국에 의해 병원으로 보내졌다. 랴오양 시립 정신병원의 한 의사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신념을 포기하게 하려고 정신과 약물을 포함한 10가지 이상의 방법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파룬궁 수련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과의 학대 사례에 대한 보고는 계속 증가했다.
밍후이(Minghui)에 따르면, 2013년 12월까지 확인된 3653명의 파룬궁 수련자 사망자 중 74명이 정신병원에서 고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36명은 정신병원서 받은 고문이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이 됐다.

2014년 3월 24일까지 밍후이(Minghui)는 정신과적 학대 사례에 대한 보고서 총 7710건을 발표했다. 발표한 수치는 중국 내에서 자료 수집이 어려우므로 실제 수치보다 크게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

편의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수련자들을 정신 병원에 가두면 어떤 법적 절차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고 여긴다. 공안이나 지역 당국 또는 당국의 압박을 받는 수련자 가족은 파룬궁 수련자들을 병원으로 보낼 수 있고, 병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공안들은 심지어 진단까지 내릴 수 있다.
정신병원을 활용하면 박해 희생자들에 대한 사회의 동정 및 지지까지 제한할 수 있다.

미국 정신과학 및 법률 학회 회장인 아브라함 할펀 박사는 2000년 정신과학 뉴스(Psychiatric News)와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가 파룬궁 수련자들을 정신 질환자이자 위험한 인물로 낙인을 찍어 이들의 명예를 실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해에 정신병원을 이용하면 매우 편리하다는 것을 확인한 중국 당국은 발 빠르게 더 많은 사람을 탄압하는 데 정신병원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탄원자, 인권 운동가, 반체제 인사 모두가 그 희생자가 됐다. 2010년 회의에서 공안부(Ministry of Public Security, MPS)는 각 성은 공안부가 관리하는 정신병원 최소 1곳을 보유할 것을 결정했다.

이 회의에서 공안부는 “공안의 허가 없이 그 어떤 비정신질환자도 정신병원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다시 말해서, 비정신질환자들의 입원은 공안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정신의학협회(World Psychiatric Association)는 파룬궁 수련자를 대상으로 한 정신과적 학대에 대한 조사를 시도했고 중국 정신과의사협회와 협의점을 끌어냈다. 하지만 2014년 중국 정신과의사협회는 협정을 취소해 버렸다.

세계정신의학협회는 더욱 노력해야 한다. 국제 사회는 여전히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과 다른 죄 없는 사람들에 대해 자행되고 있는 정신과적 학대를 멈출 의무가 있다. 인권범죄와 범죄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절대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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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헝허

이 글은 왜곡된 중국 내 정신의학 다음 사이트에 EPOCH TIMES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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